초혼 11 초혼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걱정스러운 성원이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성원이를 마주보았다. 분명 습격을 당한 것 같긴 한데... 무엇인가에 맞아서 정신을 잃었다는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나보다 작고 힘도 약한 성원이가 무사했을 리가 없다. 강도였나? 그래서 힘이 더 세 보이는 나를 때려눕히고는 성원이한테서 돈을 빼앗아 도망간 것일까?

   잠시 후 완전히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 머리를 맞고 기절한 후에도 꽤나 두들겨맞은 모양인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으윽... 여긴... 어디?"

   "우리 집. 아직 많이 아파?"

   "...뭐?"

   내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묻자, 성원이는 빙긋 웃었다. 어째서 병원이 아닌 거지?

   "내가 가지려고. 정우 형을 납치했다고. 이젠 벗어날 수 없어."

   "뭐... 라고? 이자식! 으윽..."

   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온 몸의 근육이 조각조각 끊어질 듯한 고통 뿐이었다. 도저히 이런 느낌은... 단순히 많이 맞았다고 해서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꽤나 싸움질하고 다녔던 나지만, 이 정도로 몸이 망가진 일은 없었다. 차라리 몸 어디 한 군데가 부러진다고 해도 이정도로 무기력하지는 않다.

   성원이는 정말로 걱정스럽다는 듯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녀석의 귀염성 있는 얼굴이 이정도로 무서워 보이기는 처음이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약을 좀 먹였을 뿐이야. 정우 형의 입술... 아직도 달콤해. 사실 나도 조금... 약 기운이 도는 것 같네."

   일부러 과장된 포즈로 내 위에 쓰러진다.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다. 차갑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성원이는 내 고개를 다시 똑바로 하고는 다시 입술을 겹쳤다. 녀석의 혀는 꼭 차가운 뱀의 혓바닥 같다. 내 입술을 할짝, 핥고는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목과 어깨와 쇄골과 가슴과 온통 내 몸은 그 녀석의 차가운 혓바닥이 남긴 타액으로 얼룩졌다. 나는 간신히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엉망이다. 붉고 푸른 멍이 한가득 나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칠 정도로 맞았으면서 나는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내 몸이 이 정도로 망가진 것을 보며 나는 경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우 형의 몸... 아름다워. 이 몸에 이런 자국을 내다니...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미안해, 형. 미안해..."

   이상하게 차가운 혓바닥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눈물은 놀랍도록 뜨겁다. 피멍이 든 자리를 정성껏 핥고 있는 성원이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울고 있는 것일까. 나를 이렇게 만든 주범이 바로 자신이면서. 악취미다. 이 녀석에게 이런 악취미가 있을줄은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내 피부도 익어가는 것 같다. 성원이는 완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이 녀석이 원하던 것이었을까?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범하는 것?

   "이... 미저리 같은 자식. 무슨 생각 하는거야. 날 내버려둬."

   "응 나도 그 영화 봤어. 소설가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완전히 소유하는 내용이었지? 나도 형을 소유할거야. 완벽하게. 이 아름다운 몸과, 형의 마음을 온통 차지할거라고."

   벨트가 찰칵, 소리를 내면서 풀린다. 나는 온 몸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버텼지만 성원이는 작게 쿡쿡, 웃더니 바지를 벗기고 나를 알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흥분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호모지만 적어도 변태는 아니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힘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수 밖에 없지만 모든 것을 이 녀석이 원하는 대로 놔두지는 않을 테다.

   내 생각대로 성원이는 꽤나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나라고 예전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안았던 녀석에게 전혀 아무런 감정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하게 결정했고, 이 녀석도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일이다. 이제 와서 이런 짓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눈을 감고 얼굴을 돌렸다. 보고 싶지 않아. 처참한 내 몸도, 눈물로 얼룩진 성원이의 얼굴도. 하지만 나는 아랫쪽의 감촉에 놀라서 고개를 들고 말았다.

   "야... 뭐... 뭐 하는 짓이야?"

   "내가... 가질 거야. 모두. 형의 것이라면 모두..."

   성원이는 고개를 내려 나에게 입을 가져다 댔다. 차갑지... 않아? 충분히 열이 오른 녀석의 입은 능란하게 나를 애무했고, 나는 갖은 노력을 다 해 가며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천천히 훑어 오는 성원이의 혓바닥과 입술의 감촉이 너무나 생생했다.

   "으읏... 하... 하지 마... 그만둬, 이 자식..."

   질척한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이 다 빠져들고 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다. 나에 대한 것도, 형에 대한 것도 모두 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성원이의 침대가 아니라 깊고 깊은 숲 속에 있는 회색 진창이다. 지열로 뜨끈해진 진흙이 나를 삼킨다. 나의 그곳만이 점점 더 단단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들 뿐인, 아무 것도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그져 사라져갈 뿐인 그런 장소.

   그곳에 닿는 입김. 아랫배를 간질이는 누군가의 머리칼의 느낌이 생생하다. 버드나무가 여기까지 내려와 나를 간질이고 있는 것 같다. 늪지대에 무성하게 서 있는 버들가지의 색깔은 초록색이 아니라 회색.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격렬해지는 혀놀림에 허리가 들릴 것만 같다. 마지막 순간, 나는 이 따뜻한 진창 속에 몸을 묻고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불러줘.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에게 나를 넘겨줄텐데. 이곳에 혼자... 이렇게 누워 있는 나는 대체 누구인 걸까.

   "정우 형. 좋아해요. 그 무엇보다 더."

   모든 사고가 정지되고, 아련한 사정의 느낌만이 내 모든 것을 감싸안았을 때, 내 이름을 불러 준 것은.

   성원이는 입술을 살짝, 핥고는 다시 내게 키스했다. 차가운 바람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간다. 텁텁한 향기가 나를 덮치고, 나는 그렇게 무력하게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나는 그저 성원이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해 있을 뿐인 엉망진창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에 이상한 약이 섞여 있는 것인지 나는 내 의지대로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성원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만족한듯한 웃음을 흘렸다. 이 자식... 죽여버리겠어...!

   "내가 여자가 되면 더 완벽하게 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침대에 걸터앉아 묻는 녀석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어째서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미 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 몸도, 내 시간도 모두 네놈이 지배하고 있잖아. 이젠 나를 놓아달라고.

   "어떻게 해야 형의 마음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 단 하나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울타리 안은 우리 형제만의 것이다. 온 몸이 묶여서 감금당해 있어도 내 마음은 우리 집을 향하고 있지.

   "썩을...놈. 날 죽이고서야 이런 짓을 끝내겠지. 날 놓아 달란 말이야...!"

   "죽이지 않아. 왜 죽인다고 생각해?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을 죽일 리가 없잖아! 왜 그래? 대체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는 거야? 날 사랑해 줘! 날 사랑해 달란 말이야! 왜 날 사랑하지 않아? 날 사랑해 달라고!"

   광기 어린 눈동자가 무섭다. 나는 이 녀석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천사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지만 속은 이렇게나 추악한 녀석이었다. 나는 대학교때 성원이를 좋아했던 여자애들이 모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채 학교를 그만둔 사실을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이미 눈치챘어야 하는 건데.

   "제발... 저를... 사랑해 주세요... 응? 형..."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은 눈물이 헤프다. 내 앞에서만 그런 걸까? 저렇게 뜨거운 눈물을 계속해서 흘린다면 보통의 몸으로는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녀석은 온 몸의 열기를 모두 그런 식으로 산화해 버리는 것인가.

   얇은 셔츠 한 장만 걸쳐진 몸이 너무 춥다. 왜 곁에 사람이 있는데 이리도 추운 것일까.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을 구걸하는 녀석의 모습은 무섭고, 추하다. 동그라니 귀여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나의 동정을 사기 위한 거짓 연극인지 알 수 없다.

   "놓아 줘... 날 놓아 달라고..."

   "싫어. 내가 놓아주면 형은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 버릴 거잖아. 날 사랑해주지 않을 거잖아!"

   "어떻게 해야겠니. 과거의 일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사죄할 테니까... 으윽!"

   성원이는 내 가슴을 세게 짚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과거의 일...? 그게 언제 과거의 일이 되었지? 형은 어제도 나를 안았어. 그 전날도. 며칠동안 계속해서 나를 범했지. 좋았어? 좋았지? 절정에 다달았을때의 그 표정, 움찔거리던 그 허리는 다 거짓말이었어? 그게 과거의 일인가?"

   "... 그만 해."

   "어젠 내 몸 속에서 이진수의 이름을 불렀지? 넌 저질이야. 내가 그동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 이진수의 대체물로서만 의미를 갖던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서든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만 하란 말이야!"

   "미안하다면, 날 사랑해 줘."

   끝이 없는 대화는 빙빙 돌아가는 나선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까지고 결말이 나지 않는 무한한 나선이 나와 성원이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형이 나를 처음 안았을 때,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정우 형을 만난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안아 준 것. 처음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70억 명인데, 그 중에 단 한 사람, 나의 영혼의 반쪽을 만났다고 생각했거든. 비록 그 사람은 내가 그의 영혼의 반쪽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었어. 난 평생동안 이 사람밖에 사랑하지 못할거라고. 70억명중에 단 한 사람 내가 온 마음을 다 바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에 감사했어. 사랑해. 영원히 내 것이 되어 줘."

 눈물이 가득 고인 커다란 눈동자는 한국인답지 않게 약간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성원의 눈동자 색이 독특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몇 년을 함께 지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안았지만 한번도 이렇게 눈동자를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나와 다를 바 없는 불쌍한 녀석... 나는 뜨거운 눈물이 다시 한 번 내 몸을 적시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이글루스 가든 - BL 소설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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