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레벤하우와 레베카 레벤하우는?"
"사살하였습니다."
"잘했군. 추적에 들어간다. 어제 마을을 지나간 행상이다. 남자1인 여자2인이다. 남자는 짙은 색 곱슬머리에 초록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사살하도록 하고 남자는 생포하여 데려오도록."
"생포... 입니까?"
"생포다."
"알겠습니다."
슐츠는 막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손수건을 꺼내어 피 묻은 군화를 닦던 도중, 그는 자신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7년간 SS무장친위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군인도 있었고, 민간인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국가와 당의 적이라 생각되면 모두 죽여 없앴다. 첫 살인 후에는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살인 후의 긴장을 겪을 이유는 전혀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십 수년간 마음 속으로만 상상해 왔던 복수가 드디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의 떨림이다. 피 묻은 손수건을 주머니 안에 쑤셔 넣으면서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는 색출해 총살했고, 오랜 벗 조셉 번스타인은 그의 부하들이 잡아 올 테고, 이젠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연합군과의 최전방에 가 있는 그의 동료들과 달리 그는 베를린에서 총통의 곁을 지키는 것이 주 임무였다. 사실 이런 변두리의 스파이 색출은 그 정도 되는 거물이 직접 나설 일은 아니었다. 레벤하우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누군가의 주머니를 두둑히 채워 주는 댓가로 아내와 딸자식과 함께 영국을 향해 가고 있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운 없게도 번스타인의 양복장이를 알게 되었고, 아내와 딸자식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부하들이 유대놈을 잡아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조차 기다리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기다림은 너무 길었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 볼프강 슐츠는 아무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번스타인 가를 떠나는 데에 실패했다.
“볼프?"
하얀 나이트파자마를 입고 있는 것은 번스타인 가의 장남, 조셉 번스타인이었다. 지난 달 열 네 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모습의 조셉은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형이 짐을 메고 집을 나서려 하는 것을 보고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을 떠나리라는 것을 안 조셉은 볼프에게 달려가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볼프는 자신의 가슴밖에 오지 않는 작은 소년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를 밀쳐냈다.
“......보..."
“쉿, 조용히해!”
소란에 집안의 하인들이 깨어나면 큰일이다. 볼프는 조셉의 입을 손으로 막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조셉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볼프, 이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영영 떠나는 거야?”
“그래. 난 갈 거야. 베를린에서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어. 나는 이 곳을 벗어날 거야.”
“하, 하지만…. 왜? 난 네가 없으면 안돼. 아버지도, 나 같은 것 보다는 너를 훨씬 더 좋아하고…”
번스타인 씨의 이야기가 나오자 볼프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조셉은 갑자기 돌변한 그의 모습에 기겁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지만 이내 다시 그의 옷 소매를 부여잡고 매달렸다.
“안돼, 난 볼프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조셉을 보며 볼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악마 같은 번스타인의 몸에서 이런 자식이 나왔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고 있을 더러운 피를 생각하자,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상대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볼프가 그대로 현관을 향해 몸을 돌리자, 조셉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거라도 가져가! 볼프!"
조셉이 내민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금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장식용 팽이였다. 조셉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번스타인 씨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정교한 한 쌍의 팽이. 그것은 조셉의 보물 1호였는데 그 중 한 개를 선뜻 내민 것이다.
볼프강 슐츠 중위는 손에 놓인 드레이들을 보며 마지막 밤을 생각했다. 장난감으로는 절대로 쓸 수 없고, 그렇다 해서 장식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한 모양의 사각형 팽이는 그 자체로 번스타인의 허영을 보여 주는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조잡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금 덩어리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만일 그것을 팔았다면 당에 입당하기 전에 겪었던 수치스러울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가 그러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 팽이는 그 소년의 것이다. 웃는 모습이 햇살과 같던 아이, 조셉 번스타인.
상념에 빠져 있던 볼프는 문득 바깥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하들이 유대인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 했다. 팽이를 포켓에 챙기고 막사 밖으로 나서자 마을 저편에서 부하들이 부랑자 행색의 사람을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대대로라면 아마 그는 볼프가 십 년동안 바라마지않던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보고드립니다! 마을에서 20km떨어진 산길의 염소지기 헛간에서 도주 중인 유대인 가족3인을 발견, 여자2인은 사살하였으며 남자1인은 명령에 의해 체포,압송하였습니다. 이 유대인의 처분권은 중위님께 있습니다."
"좋아.잘 했네. 이자의 신병은 내가 구속하겠네. 자네들은 이만 가 보도록. 마을의 소개에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오늘 밤은 마을 서쪽에 악단이 와서 위문 공연을 한다고 하니 가 보는 것도 좋겠지."
은근히 하룻 밤의 자유 시간을 주는 상사에 대해 부관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경례를 붙이고 돌아갔다. 그동안 임무에 바빠 한 달 이상을 제대로 된 휴식 한 번 취하지 못한 볼프의 부대였다. 악단에는 제법 반반한 여가수와 무희들도 상당하다고 했으니 운나쁜 당번병을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이 밤 새도록 여자들의 치마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볼프는 양 팔을 포박당한 채 차가운 땅에 얼굴을 처박고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조셉 번스타인이란 말인가? 천사같던 미소를 짓던 그 해맑은 소년이 맞는가?
볼프는 그의 얼굴을 발로 가볍게 건드렸다. 사내는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지만 여전히 고개는 땅바닥에 처박은 채였다.
"일어나."
"......으으"
"일어나, 명령이다."
배 쪽을 조금 더 강한 힘으로 차자 사내는 꿈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총기 어렸던 눈은 흐리멍덩하게 변해 있었고 초점조차 맞추지 못한 채 그저 제 앞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피가 꾸덕꾸덕 말라붙은 머리칼과 흙때 묻은 얼굴은 구역질나도록 역겨웠다. 그러나 볼프는 눈앞의 더러운 사내를 보며 미칠듯한 욕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조셉 번스타인이다. 그를 한 마리 미친 개로 만들었던 그 소년. 혐오스럽고 오만한 유대놈의 자식.
"당번병!"
볼프의 외침에 시내에 놀러 나가지 못한 불운한 신세를 한탄하던 어린 군인이 쏜살같이 달려와 경례를 붙였다.
"물을 가져와. 냄새가 나서 심문을 하지 못 하겠군. 물을 가져와서 저 놈에게 뿌리고 자넨 이 막사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라. 중요한 증인이다."
"넵!"
당번병은 경례를 붙이고 잽싸게 달려가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와서 유대놈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겨울의 찬 공기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맞자 조셉의 몸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볼프는 잔인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검은 머리칼과 하얀 얼굴이 제 색을 찾아 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두 양동이 째를 비웠을 때 볼프는 당번병에게 이만 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조셉의 뒷덜미를 잡고 막사로 끌고 들어왔다. 조셉은 입술이 새파랗게 되어 벌벌 떨고 있었지만 아직 한 마디의 비명도 살려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볼프는 십 년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된 욕망을 풀어 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볼프는 사나운 손길로 물에 흠뻑 젖은 조셉의 옷가지를 뜯어내다시피 벗겨냈다. 옷이라기보다는 넝마에 가까웠지만 겨울이었기 때문에 제법 두툼하고 여러 겹으로 된 천떼기 때문에 짜증을 느끼던 볼프는 순간 조셉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그의 눈에는 당황과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절망이 뒤엉켜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보...볼프?"
볼프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조셉은 반라의 몸으로 그에게 엉겨들었다. 차가운 살갗이 닿는다.
"볼프 맞지? 볼프! 네가 어떻게 여기에......헉! 그, 그 견장은......!"
정신없이 볼프의 모습을 살피던 조셉은 그제서야 볼프의 어깨에 달린 두 개의 번개 무늬를 보았는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게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조셉은 그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재회의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된다. 조금 더 고통스러워야 하리라. 볼프는 벌벌 떨면서 실낱 같은 희망을 찾고 있는 청년의 뺨을 후려쳤다. 쨕! 하는 매서운 파열음과 함께 조셉의 볼이 말채찍에라도 얻어맞은 듯 새빨갛게 부풀었다.
"네가 알던 볼프강 슐츠는 죽었다. 지금 이 순간, 조셉 번스타인도 죽었다. 너는 내 노예다. 더러운 유대 놈아."
"사살하였습니다."
"잘했군. 추적에 들어간다. 어제 마을을 지나간 행상이다. 남자1인 여자2인이다. 남자는 짙은 색 곱슬머리에 초록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은 사살하도록 하고 남자는 생포하여 데려오도록."
"생포... 입니까?"
"생포다."
"알겠습니다."
슐츠는 막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손수건을 꺼내어 피 묻은 군화를 닦던 도중, 그는 자신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7년간 SS무장친위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군인도 있었고, 민간인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국가와 당의 적이라 생각되면 모두 죽여 없앴다. 첫 살인 후에는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살인 후의 긴장을 겪을 이유는 전혀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십 수년간 마음 속으로만 상상해 왔던 복수가 드디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의 떨림이다. 피 묻은 손수건을 주머니 안에 쑤셔 넣으면서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는 색출해 총살했고, 오랜 벗 조셉 번스타인은 그의 부하들이 잡아 올 테고, 이젠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연합군과의 최전방에 가 있는 그의 동료들과 달리 그는 베를린에서 총통의 곁을 지키는 것이 주 임무였다. 사실 이런 변두리의 스파이 색출은 그 정도 되는 거물이 직접 나설 일은 아니었다. 레벤하우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누군가의 주머니를 두둑히 채워 주는 댓가로 아내와 딸자식과 함께 영국을 향해 가고 있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운 없게도 번스타인의 양복장이를 알게 되었고, 아내와 딸자식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부하들이 유대놈을 잡아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조차 기다리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기다림은 너무 길었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 볼프강 슐츠는 아무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번스타인 가를 떠나는 데에 실패했다.
“볼프?"
하얀 나이트파자마를 입고 있는 것은 번스타인 가의 장남, 조셉 번스타인이었다. 지난 달 열 네 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모습의 조셉은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형이 짐을 메고 집을 나서려 하는 것을 보고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을 떠나리라는 것을 안 조셉은 볼프에게 달려가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볼프는 자신의 가슴밖에 오지 않는 작은 소년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를 밀쳐냈다.
“......보..."
“쉿, 조용히해!”
소란에 집안의 하인들이 깨어나면 큰일이다. 볼프는 조셉의 입을 손으로 막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조셉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볼프, 이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영영 떠나는 거야?”
“그래. 난 갈 거야. 베를린에서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어. 나는 이 곳을 벗어날 거야.”
“하, 하지만…. 왜? 난 네가 없으면 안돼. 아버지도, 나 같은 것 보다는 너를 훨씬 더 좋아하고…”
번스타인 씨의 이야기가 나오자 볼프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조셉은 갑자기 돌변한 그의 모습에 기겁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지만 이내 다시 그의 옷 소매를 부여잡고 매달렸다.
“안돼, 난 볼프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조셉을 보며 볼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악마 같은 번스타인의 몸에서 이런 자식이 나왔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고 있을 더러운 피를 생각하자,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상대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볼프가 그대로 현관을 향해 몸을 돌리자, 조셉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거라도 가져가! 볼프!"
조셉이 내민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금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장식용 팽이였다. 조셉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번스타인 씨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정교한 한 쌍의 팽이. 그것은 조셉의 보물 1호였는데 그 중 한 개를 선뜻 내민 것이다.
볼프강 슐츠 중위는 손에 놓인 드레이들을 보며 마지막 밤을 생각했다. 장난감으로는 절대로 쓸 수 없고, 그렇다 해서 장식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한 모양의 사각형 팽이는 그 자체로 번스타인의 허영을 보여 주는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작고 조잡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금 덩어리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만일 그것을 팔았다면 당에 입당하기 전에 겪었던 수치스러울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가 그러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이 팽이는 그 소년의 것이다. 웃는 모습이 햇살과 같던 아이, 조셉 번스타인.
상념에 빠져 있던 볼프는 문득 바깥이 소란스러워진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하들이 유대인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 했다. 팽이를 포켓에 챙기고 막사 밖으로 나서자 마을 저편에서 부하들이 부랑자 행색의 사람을 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대대로라면 아마 그는 볼프가 십 년동안 바라마지않던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보고드립니다! 마을에서 20km떨어진 산길의 염소지기 헛간에서 도주 중인 유대인 가족3인을 발견, 여자2인은 사살하였으며 남자1인은 명령에 의해 체포,압송하였습니다. 이 유대인의 처분권은 중위님께 있습니다."
"좋아.잘 했네. 이자의 신병은 내가 구속하겠네. 자네들은 이만 가 보도록. 마을의 소개에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오늘 밤은 마을 서쪽에 악단이 와서 위문 공연을 한다고 하니 가 보는 것도 좋겠지."
은근히 하룻 밤의 자유 시간을 주는 상사에 대해 부관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경례를 붙이고 돌아갔다. 그동안 임무에 바빠 한 달 이상을 제대로 된 휴식 한 번 취하지 못한 볼프의 부대였다. 악단에는 제법 반반한 여가수와 무희들도 상당하다고 했으니 운나쁜 당번병을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이 밤 새도록 여자들의 치마 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볼프는 양 팔을 포박당한 채 차가운 땅에 얼굴을 처박고 벌레처럼 꿈틀대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조셉 번스타인이란 말인가? 천사같던 미소를 짓던 그 해맑은 소년이 맞는가?
볼프는 그의 얼굴을 발로 가볍게 건드렸다. 사내는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지만 여전히 고개는 땅바닥에 처박은 채였다.
"일어나."
"......으으"
"일어나, 명령이다."
배 쪽을 조금 더 강한 힘으로 차자 사내는 꿈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총기 어렸던 눈은 흐리멍덩하게 변해 있었고 초점조차 맞추지 못한 채 그저 제 앞의 사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피가 꾸덕꾸덕 말라붙은 머리칼과 흙때 묻은 얼굴은 구역질나도록 역겨웠다. 그러나 볼프는 눈앞의 더러운 사내를 보며 미칠듯한 욕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조셉 번스타인이다. 그를 한 마리 미친 개로 만들었던 그 소년. 혐오스럽고 오만한 유대놈의 자식.
"당번병!"
볼프의 외침에 시내에 놀러 나가지 못한 불운한 신세를 한탄하던 어린 군인이 쏜살같이 달려와 경례를 붙였다.
"물을 가져와. 냄새가 나서 심문을 하지 못 하겠군. 물을 가져와서 저 놈에게 뿌리고 자넨 이 막사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라. 중요한 증인이다."
"넵!"
당번병은 경례를 붙이고 잽싸게 달려가 양동이 가득 물을 담아 와서 유대놈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겨울의 찬 공기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맞자 조셉의 몸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볼프는 잔인한 즐거움을 느끼며 그의 검은 머리칼과 하얀 얼굴이 제 색을 찾아 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두 양동이 째를 비웠을 때 볼프는 당번병에게 이만 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조셉의 뒷덜미를 잡고 막사로 끌고 들어왔다. 조셉은 입술이 새파랗게 되어 벌벌 떨고 있었지만 아직 한 마디의 비명도 살려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정신을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볼프는 십 년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된 욕망을 풀어 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볼프는 사나운 손길로 물에 흠뻑 젖은 조셉의 옷가지를 뜯어내다시피 벗겨냈다. 옷이라기보다는 넝마에 가까웠지만 겨울이었기 때문에 제법 두툼하고 여러 겹으로 된 천떼기 때문에 짜증을 느끼던 볼프는 순간 조셉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그의 눈에는 당황과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절망이 뒤엉켜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보...볼프?"
볼프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조셉은 반라의 몸으로 그에게 엉겨들었다. 차가운 살갗이 닿는다.
"볼프 맞지? 볼프! 네가 어떻게 여기에......헉! 그, 그 견장은......!"
정신없이 볼프의 모습을 살피던 조셉은 그제서야 볼프의 어깨에 달린 두 개의 번개 무늬를 보았는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게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조셉은 그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재회의 기쁨을 누려서는 안 된다. 조금 더 고통스러워야 하리라. 볼프는 벌벌 떨면서 실낱 같은 희망을 찾고 있는 청년의 뺨을 후려쳤다. 쨕! 하는 매서운 파열음과 함께 조셉의 볼이 말채찍에라도 얻어맞은 듯 새빨갛게 부풀었다.
"네가 알던 볼프강 슐츠는 죽었다. 지금 이 순간, 조셉 번스타인도 죽었다. 너는 내 노예다. 더러운 유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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